이태원 참사 혐오·차별 표현, 대체 왜 그대로 둘까?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에 맞춰 진실이 규명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글을 썼다. 2023년 11월 6일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고한 글이다.
댓글 인터페이스의 잦은 개편, 왜?
최근 네이버뉴스는 ‘뉴스댓글 답글 강화’ 기능을 도입했다가 적용을 중단했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있다면서 “댓글을 통해 건강한 소통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이용자들의 관심과 협조를 당부했다. 네이버뉴스는 어떤 부작용을 우려해 이 서비스를 중단했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나, 언론사들은 일제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특정 이슈 논쟁이 댓글 전쟁을 일으킬 수 있고 클릭 유도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새삼스럽다. 네이버뉴스가 기대하는 “건강하고 의미 있는 소통”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위 그림 예시처럼 뉴스 댓글 작성자끼리 예의 바르게 착한 답글을 주고받는 상황을 본 적이 거의 없어서. 더군다나 ‘10.29 이태원 참사’ 뉴스 댓글에서 이런 훈훈한 ‘동감’과 ‘공감’은 찾기 어렵다. 뉴스 댓글창 ‘의견 양극화’가 심각함을 뻔히 알면서도 네이버뉴스가 왜 이런 개편을 시도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혐오의 반향실, ‘댓글 팔로우’
2022년 4월 네이버뉴스는 ‘댓글 팔로우 기능’을 도입했다. 언론사, 기자, 연재물 대상의 구독 기능을 일반 이용자에게 적용한 것. “인상 깊은 댓글을 우연히 접했다면, 팔로우 설정을 통해 그 이용자가 작성한 글을 쉽고 편리하게 볼 수 있다”라고 안내했다. 댓글 팔로우는 과연 네이버뉴스의 의도대로 “위트 넘치는 댓글과 높은 식견의 감동적인 댓글”로 만남을 이어가는 순기능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적어도 ‘10.29 이태원 참사’ 뉴스에서는 ‘댓글 팔로우’ 기능이 소수 이용자에 의해 악용되고 있었다. 이들은 ‘댓글 팔로우’를 통해 ‘뉴스댓글 답글’을 이미 노련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특정 언론사 기사에 몰려가 ‘함께 댓글과 답글 활동을 하는’ 특이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10.29 이태원 참사’와 전혀 무관한 정치 혐오, 지역비하, 차별 표현 등의 댓글과 답글을 작성하며 서로 친근하게 인사까지 주고받기도 했다. 이들은 서로 ‘댓글 팔로우’를 맺은 관계였다.

위의 기사에 첫 댓글과 답글 작성자는 다른 기사에서도 ‘자주’ 같이 발견되었다. 댓글마다 인사성 밝은 ‘친목 답글’을 작성한 위 이용자의 팔로워 아이디는 658개, 팔로잉은 41개였다. 이 아이디의 댓글 이력 확인 결과, ‘10.29 이태원 참사’ 뉴스는 물론 거의 모든 뉴스 댓글에서 정치 혐오와 지역 차별, 미확인 정보를 뒤섞어 장황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특히 “전남 출신”을 콕 집어 지역을 비하하는 차별 표현을 자주 썼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공개 보도에 작성한 댓글에서는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는 게 답”이라며 지역 폄훼 의도가 분명한 표현까지 교묘하게 엮어 쓰고 있다.

이 이용자야말로 네이버뉴스가 댓글 팔로우 기능에서 언급한 “인상 깊은 댓글”을 썼음이 분명하다. 특히 댓글 마지막에 팔로워 닉네임을 호명하며 친밀하게 인사하는 친목 행위(빨간색으로 표기)가 인상적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줄 만큼 “건강한 소통”으로 선뜻 동의하긴 어렵다. 게다가 이 이용자는 아래와 같이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중복 댓글을 작성하고 있어서, 네이버 뉴스 댓글 게시판 운영원칙 위반이 의심된다.

이 사례만 보더라도 네이버뉴스 ‘댓글 팔로우’ 기능은 비슷한 신념과 성향의 이용자들끼리 혐오, 차별 표현 댓글로 재빠르게 댓글 여론을 잠식해버리는 ‘혐오의 반향실’을 만들 여지가 충분함을 알 수 있다.
네이버뉴스 ‘댓글 팔로우’와 댓글 이력 공개의 맹점
‘댓글 팔로우’ 기능을 활용해 ‘10.29 이태원 참사’ 기사에 혐오, 차별 표현 댓글을 1개 이상 작성한 아이디 중 누적 댓글 공감수가 높은 아이디 3개를 추려 댓글 이력을 확인해보았다.

이들은 댓글 팔로우 기능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2016년부터 댓글 15,940건을 작성해 누적 공감수만 무려 13,172,671회가 넘는 좌측 첫 번째 아이디는 112개 아이디와 팔로워를 맺고 있고, 팔로잉은 96개였다. 이 아이디는 댓글 14,937건을 작성해 8,336,196회의 공감을 받은 아이디와 댓글 12,844건을 작성해 5,330,832회의 공감을 받은 아이디와도 서로 ‘맞팔’을 맺고 있었다. 이 아이디는 언론에 ‘헤비 댓글러’로 언급된 이력이 있다. 이 3개 아이디의 팔로워만 합산해도 1,300여 개가 넘는데, 그래서인지 이태원 참사 뉴스를 비롯해 여러 뉴스에서 ‘베댓’(베스트 댓글)을 선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댓글을 작성한 기사는 댓글수와 공감수도 상당히 많았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댓글 팔로우’ 관계의 이용자가 댓글을 작성하면 ‘알림’이 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신념과 성향을 가진 ‘댓글 팔로우’ 이용자들은 알림을 받고 특정 기사에 우르르 몰려가 실시간으로 댓글과 답글 작성이 가능하다. 서로의 댓글에 공감 버튼을 눌러주면서 해당 기사에 비슷한 논조나 성향의 댓글을 작성해 소위 ‘댓글 화력’을 뽐낼 수도 있다. ‘기사 댓글 좌표’를 즉시 공유할 수 있으니 ‘친목 답글’도 당연히 가능하다. 무엇보다 공개된 댓글수나 공감수가 커뮤니티 계급장 또는 활동 ‘배지(badge)’가 되어 속칭 ‘네임드 댓글러’로 유명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유명세를 어떤 식으로든 활용할 수 있다.
소수의 ‘헤비 댓글러’들이 ‘10.29 이태원 참사’ 기사에 정치 혐오와 불쾌한 표현을 일관되게 작성해 ‘댓글 팔로우’를 활용해 댓글 여론 정쟁화를 주도했다면 큰 문제다.
기사-기자-댓글 팔로우-댓글정렬, 황폐의 하모니
우리는 ‘10.29 이태원 참사’ 보도의 악성 댓글은 이용자가 기자를 직접 구독할 수 있는 기능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혹자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기자 구독과 알림 설정을 문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당연해 보이는 ‘기자-독자 구독’ 기능은 기자도 독자도 뉴스생태계도 황폐하게 만든다. ‘10.29 이태원 참사’ 뉴스에 악성댓글이 선점할 수밖에 없는 인터페이스 구조의 맹점을 짚어보자.
- 특정 언론사의 기자를 구독하면 해당 기자가 기사를 입력했을 때 ‘알림’이 온다.
- 기자를 구독하는 네이버뉴스 이용자는 ‘알림’을 받고 재빨리 댓글을 쓸 수 있다.
- 기사를 읽을 겨를 없이 경쟁적으로 ‘댓글 선점’을 하고 싶은 이용자들은 즉시 댓글을 달 수 있다. 공감을 많이 받아 1등 댓글이 되면, 게임에서 승리한 듯한 착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댓글을 선점해 1등 댓글이 되려면 예의 바르고 공손한 댓글보다 감정을 건드리고 분노를 촉발하는 내용이 유리하기 때문에 반말, 모욕, 조롱이 뒤섞인 표현이 쏟아진다. 누가 누가 더 거칠게 쓰나 댓글 경쟁대회가 될 수밖에 없다.
- ‘댓글 팔로우’ 기능을 활용해 다수의 아이디와 연결된 이용자가 기자의 구독자일수록, 해당 기사의 공감과 댓글 개수는 단시간에 올라간다. 기사 클릭이 많아지면 기자에겐 이득이므로 댓글의 품질까지는 관리하지 않는다.
- 따라서 클릭수 높은 기사가 기사 품질까지는 보장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기사 제목과 선정적인 내용이 클릭 유도에는 더 유리하다.
네이버뉴스의 기자 구독과 이용자 응원은 악용될 위험도 있다. 네이버뉴스 기자 홈 확인 결과 전화번호와 카카오톡 계정을 공개하는 기자도 있었는데 제보 목적으로 연락처를 공개한다지만, 기자 팬덤은 경계하는 게 좋다. 이 기능 또한 숫자로 표기되는지라 기사 품질 비교가 아닌 기자의 구독자수와 댓글수, 공감수를 가시적으로 비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기자들 사이의 경쟁을 부추길 여지가 있다.
기저율의 무시, ‘공감수’ 많은 기사 댓글이 여론이라는 착각
네이버뉴스 댓글 게시 구조는 ‘순공감순’으로 초기값(디폴트 밸류, default value)이 설정되면 댓글 품질과 관계없이 공감수 높은 댓글이 계속 상위에 노출되는 인터페이스이다. 그런데 네이버 댓글 인터페이스는 이런 댓글 정렬은 기사 본문을 회피하게끔 유도할 수 있다. 기사 제목 아래 ‘추천 서비스’와 ‘댓글 탭’을 클릭하면 바로 댓글 창으로 넘어가는데, 기사 본문과 댓글 페이지가 분리되어 있다. 기사 제목과 기사 요약만 읽고 댓글 창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구조이다. 이런 인터페이스는 기사 본문과 댓글 내용이 완전히 괴리되는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일례로 2022년 11월 6일 중앙일보 이수민 기자의 <“안타깝긴한데 니가 놀러갔잖아”…온몸 멍든 그들, 마음도 멍든다 [현장에서]>라는 기사는 온라인 댓글에 멍드는 희생자와 유가족을 다룬 기사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가족이 상처받을만한 댓글이 첫 댓글로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기사를 제대로 읽었더라면, 기사의 취지를 이해했다면 이런 악성댓글을 작성해서도, 공감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마치 ‘큰 숫자’로 보이는 댓글 공감수는 우리에게 대세 온라인 여론으로 착각하게끔 만든다. 언론사와 기자마저도 공감 상위 댓글의 심각성을 알고도 기사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 정렬을 선택해 비윤리적인 공론장 행세를 하고 있다.
공감을 많이 받아 첫 댓글로 고정되고, 공감수가 각자의 기준에서 상당히 큰 숫자라고 인식하면 ‘초두효과(primacy effect)’가 발생할 수 있다. ‘초두효과’란 이른바 ‘첫인상 효과’로 처음에 제시된 정보나 인상이 나중에 제시된 정보보다 기억에 더 큰 영향을 주는 현상을 뜻한다. 기사를 부주의하게 읽으면 기사 내용보다 첫 댓글과 공감수 상위 댓글을, 그 댓글을 공감한 ‘숫자’를 더 강력하게 인식할 수 있다. 그 댓글이 감정을 자극하거나 분노를 촉발한다면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특정 사안에 혐오 표현이나 비하, 조롱을 먼저 접했다면 맥락을 무시한 채 먼저 부정적인 인식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숫자에 의한 착각이다.

냉정히 생각해보자. 중앙일보 네이버뉴스 구독자는 약 500만 명이다. 이 기사는 1,200여 건의 공감을 받았고, 첫 댓글은 고작 7,500여 개의 공감을 받았다. 결국 중앙일보 구독자의 겨우 0.024%가 이 기사에 공감했고, 첫 댓글도 구독자의 0.15%만 공감했을 뿐이다. 댓글 공감수는 대표성이 전혀 없는, 극히 일부 이용자의 미미한 수치에 불과한데 우리는 자주 이 ‘기저율’을 망각한다. 특히 숫자 크기에 휘둘린다. 우리 뇌는 복잡한 사안을 간단히 인식해 판단하려는 게으른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댓글에 표시된 공감수에 의해 큰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서울여대 장윤재 교수는 “대표성이나 진실성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댓글은 여론 단서 내지 여론 그 자체”로 여겨져 왔다고 설명하면서 우리가 댓글 정보를 인지적으로 처리하는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댓글을 통한 합의 추정 과정에서 사람들은 가능한 많은 수의 댓글을 면밀히 검토한 후 여론 추이를 합리적, 객관적으로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극히 일부 댓글만을 읽고 여론을 유추한다”는 것. 따라서 포털 뉴스의 ‘공감순’ 댓글이나 추천수 표시는 기저율 착시를 일으켜 과대 추정을 부추긴다는 것을 늘 염두해야 한다.
숫자 기저율을 무시하도록 언론사가 댓글 ‘어그로’를 끌 수 있음을 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위 ‘순공감순’ 댓글의 비하·조롱 표현은 매우 극소수가 유가족을 모욕한 것인데도 반대 공감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숫자 착각’에 의해 다수 여론으로 착각할 수 있다. 단언컨대 댓글 참여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희생자에 대한 증오, 혐오 표현을 마주했을 때 이 기저율을 떠올리며 절망하지 않으면 좋겠다.
댓글 시인 ‘제페토’가 나올 수 없는 이유
네이버뉴스는 극히 일부인 적극적인 댓글 작성자들의 소통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용자 인터페이스를 개편해왔다. 최근 개편에서는 댓글 작성자를 즉시 팔로우할 수 있는 버튼 기능도 추가했다. 네이버뉴스의 ‘팔로우 기능’ 개편 공지를 보면, 왠지 인터넷 댓글 시인 ‘제페토’와 쉽게 팔로우 맺을 것 같은 착각도 생긴다.
‘제페토’는 2010년 당진의 철강업체에서 섭씨 1,600도가 넘는 전기용광로에 빠져 흔적도 없이 하늘나라로 간 한 청년의 뉴스 기사에 ‘그 쇳물 쓰지 마라’는 댓글 시를 써서 유명해졌다. 당시 자그마한 사고 기사로 묻힐 뻔했던 사건이 그의 댓글로 사회적으로 크게 환기되었다. ‘제페토’의 기사 댓글에 달린 수백 개의 대댓글과 답글에도 한 생명의 비극에 공감하는 인간의 슬픔이 있었다. 과거 인터넷 광장에는 안타까운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던 풍토가 있었다.

종종 ‘10.29 이태원 참사’ 뉴스에서 수집한 수백만 건의 댓글 데이터를 멍하게 보고 있을 때가 있다. 혹시 서로를 다독이는 위로의 댓글과 ‘제페토’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놓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제페토’의 시는커녕 반말과 욕설, 조롱, 정쟁 범벅인 아귀다툼만 잔뜩 보일 뿐이다. 잠깐의 곁눈질만으로도 마음이 피폐해져 이내 댓글 데이터 창을 닫게 된다. ‘제페토’도 네이버뉴스에 차마 댓글 쓸 엄두를 못 내리라. 거친 욕설과 인신공격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악성댓글이 점령한 뉴스에 팔로우 기능을 덕지덕지 강화해봤자 댓글 시인은 오지 않는다. 거듭되는 댓글 정책 개편이 욕설과 거친 말을 일삼는 소수의 목소리 큰 단골 댓글 작성자 편의를 위해서만 이루어진다면,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다수의 이용자는 점점 더 그 광장에 머물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네이버뉴스는 더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이야기할 수 있는 광장으로서의 댓글창을 고민하기 바란다. 일부 뉴스 댓글창을 닫고 가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