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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은 영혼을 잠식한다

네이버 뉴스와 댓글이 잠식한 10.29 이태원 참사 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에 맞춰 진실이 규명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글을 썼다. 2023년 11월 6일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고한 글이다.


청소년 보호가 전혀 없는 무책임한 플랫폼과 언론

12월 12일은 이태원 참사 피해자 고 이재현 군의 1주기였다. 16살의 영혼이 겪었을 갑작스러운 고통과 절망이 얼마나 컸을까. 소년은 이태원 참사 피해자이자 목격자로서 한 시사 프로그램 유튜브 영상에 댓글을 남겼다. 두 친구를 잃었고 혼자 살았다는 죄책감이 컸던 그에게 큰 용기였으리라. 그러나 온라인 공간은 무도했고 잔인했다. 댓글에 10대라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참사의 진실을 알리려 했던 소년에게 공격과 조롱이 이어졌다. 영상 제공자나 플랫폼은 그를 혐오성 2차 가해로부터 보호해주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로 홀자 답글을 쓰며 싸웠지만 소용없었다. 참사를, 마음의 힘듦을 알리려던 굳센 용기는 거대한 절망이 되었다. 한 인간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 버렸다.

고 이재현 군이 작성했던 댓글. ‘10대 피해자’라고 밝혔음에도 100개 넘는 답글에는 막말과 조롱의 2차 가해성 표현이 많았다. “누가 이태원 참사 159번째 희생자를 만들었나”(뉴스타파 2023.2.15.) 화면 갈무리

언론은 소년의 죽음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충분히 보호할 수 있었던 10대 소년을 자살이라는 ‘선택’으로 몰고 간 건 누구일까. 댓글 작성자가 직접 가해자라면 게시물 관리 의무가 있는 플랫폼 사업자와 언론은 가해 방조자라 할 만큼 무책임했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를 향한 혐오 표현은 유튜브나 네이버뉴스나 별반 다르지 않다. 끔찍하고 적나라하다.

조선일보 혐오 표현 댓글, 규정 미준수가 0건?

네이버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언론사별로 클린봇 탐지 강도를 직접 설정하고, 이태원 참사와 같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악성 댓글이 증가할 경우 별도 알림 등을 통해 빠르게 댓글 OFF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신규 기능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또 네이버 ‘그린인터넷’ 운영리포트에서는 2022년 7월 클린봇을 이용한 사전 차단 조치 진행을 알린 바 있다.

네이버 ‘그린인터넷’ 운영리포트 <2022년 하반기 게시물 보호 현황> 갈무리

네이버의 다짐대로 “유해한 댓글의 대부분이 차단”되고 있을까. 고 이재현 군 관련 네이버뉴스에서 2차 가해성 혐오 표현 댓글이 잘 차단되고 관리되었는지 확인해보았다. 분석 결과 고인의 명복을 비는 ‘선플’도 많았지만, 특정 언론사 기사에 패륜적이고 모욕적인 조롱과 악성 댓글이 몰려있었다. 바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기사 댓글이다. 두 언론사 기사 댓글은 눈 뜨고 못 볼 지경의 악성 혐오 표현 댓글 일색이었고, 특히 조선일보 기사에 달린 공감수 높은 댓글은 혐오 표현 수위가 상당히 높았다. 그런데도 고 이재현 군 관련 조선일보 기사에 규정 미준수 댓글이 단 한 건도 없다는 건 참 이상하다.

네이버뉴스의 댓글 관리가 실효성 없는 게 아닌지, 특정 언론사 댓글은 아예 규정 위반 적용을 안 하는 건지 의심할 만하다. 무엇보다 고 이재현 군 관련 전체 기사 75건에 달린 댓글 1만 4천여 건의 0.46%에 해당하는 단 64건의 댓글이 규정 미준수로 삭제되었다는 건 더욱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수집한 데이터에서 작성자 스스로 삭제한 댓글이 꽤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고 이재현 군 관련 기사의 전체 댓글 중 작성자가 삭제한 댓글 비율은 약 21%였다. 규정 미준수로 삭제된 댓글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왜 스스로 댓글을 삭제하는 것일까.

작성자 스스로 시간 경과 후 부적절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표현이 있다고 판단했을 때, 댓글 작성 후 생각이 바뀌었을 때 삭제할 수 있다. 법적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지운 댓글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나의 댓글을 막말로 비판하거나 공격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때문에 삭제할 수 있다. 그러나 굳이 선플을 지울 이유는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스스로 삭제한 21%의 댓글마저도 악성 표현이 더 많지 않았을까 추정해볼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스스로 댓글을 삭제해 노출을 없앤 용기만큼은 가상하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어떤 댓글을 지웠는지 진실은 댓글 작성자와 네이버만이 알 것이다.

어떤 네이버뉴스 댓글이 삭제되는지 알고 싶다

우리는 수집한 전체 이태원 참사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도 비슷한 삭제 결과가 나오는지 작성자 스스로 지운 ‘자기 삭제 비율’과 ‘규정 미준수 삭제 비율’을 언론사별로 분석해보았다.

수집된 이태원 참사 관련 전체 네이버뉴스 댓글에서 사라진 댓글은 약 23%(‘자기삭제비율’ 22.54% + ‘규정위반삭제비율’ 0.37%)로 댓글 자기삭제가 규정위반 삭제에 비해 61배나 많았다.

각 언론사의 이태원 참사 기사에 달린 댓글 전체를 분석한 결과, 댓글 작성자 스스로 댓글을 삭제한,‘자기 삭제 비율’이 24.14%로 상대적으로 높은 언론사는 조선일보였다. 네이버뉴스 조선일보 독자들은 기사 댓글을 썼다가 지우는 경향이 타 언론사보다 높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고 이재현 군 관련 조선일보 기사에 댓글을 단 사람들은 더 많이 댓글을 삭제했는데, ‘자기삭제비율’이 26.35%로 상당히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네이버뉴스가 삭제한 ‘규정 미준수 삭제 비율’은 언론사 평균 0.37%에 불과해 큰 차이가 없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MBC의 ‘규정 미준수 삭제 비율’은 0.4%를 넘어 평균치를 상회했다.

작성자 댓글 삭제가 규정 미준수로 삭제당하는 이용자보다 무려 61배나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조심스러운 가설이지만 1) 댓글 게시판을 즉흥적인 감정 해소 창구로 활용하거나 2) 이슈와 상관없이 관심 끌기 방편으로 댓글을 활용하거나 3) 특정 목적을 갖고 댓글을 쓰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다. 추후 댓글 이용자(댓글 작성자, 댓글 공감 누르는 사람, 댓글 읽는 사람, 댓글 신고하는 사람 등) 중심의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댓글의 ‘자기 삭제 비율’과 ‘규정 미준수 삭제 비율’의 큰 격차는 네이버가 이태원 참사 전체 뉴스에 달린 악성 댓글을 알고도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기엔 명백한 모욕, 혐오 표현 댓글인데도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대응이다. 혹시 네이버뉴스는 규정 미준수 댓글을 0.5% 아래의 일정 비율로 관리하며 악성 댓글을 방치하는 건 아닐까. 악성 댓글 작성자라도 네이버에 오래 머물며 활발히 댓글 작성 활동하는 데 가중치를 두는 게 아닐까. 평범한 네이버뉴스 이용자가 환멸을 느끼는 댓글을 왜 관리하지 못할까.

규정 미준수 댓글이 전체 네이버뉴스 댓글의 0.5% 미만일 거라 생각할 사람은 드물다. 네이버뉴스를 10분만 보더라도 악성 댓글이 얼마나 많은지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정 미준수 댓글 삭제에 대한 의혹을 없애려면 네이버는 댓글 삭제 원칙과 기준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혐오 댓글로 여전히 고통받는 참사 피해자들

올해 10월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열린 <혐오차별 대응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고 이재현 군의 어머니 송해진 씨는 재난피해자 인권 보호 대책이 전무하다고 말했다. 특히 안전 책임자인 장관, 총리,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 재난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성 명예훼손, 모욕, 혐오 표현 범주에 넣을 만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송 씨는 “집권 여당의 당 대표와 정책위원회 의장은 공개적으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활동이 ‘북한의 지령’이라는 주장을 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고, 유족을 향해 막말을 했던 김미나 창원시의원은 1심에서 선고유예를 받았다”며 이들의 도 넘은 발언이 아무렇지도 않게 언론에서 인용되는 것을 비판했다.

언론보도대로 고 이재현 군의 죽음이 ‘극단적 선택’이었다면 도움과 공감을 애타게 바랐던 16살 피해자에게 ‘선택’하라고 부추기고 잔인하게 조롱한 이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 예일대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는 한 방송에서 “자살을 두고 ‘극단적 선택’이라고 부르지 말자. 자살을 피하기 위한 그 단어가 오히려 자살을 부추기고 있다”라면서 “직접적으로 중립적인 용어인 ‘자살’을 ‘자살’로 보도해야 한다”라고 했다. 또 “자살을 힘든 상황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하나의 가능성처럼 보도하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피해자를 벼랑에서 내몬 가해자는 분명 존재하는데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유가족과 희생자, 피해 생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다. 모든 연령대에 노출되는 네이버뉴스를 통해 혐오와 차별, 조롱이 여과 없이 게시되어 청소년 생명 보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네이버뉴스를 비롯 온라인 게시물의 모욕, 차별, 혐오 표현 문제는 제도적 방안을 꼭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