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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열상’ 대테러상황실발 첫 보도는 조선일보였다

2024 네이버 뉴스 분석 시리즈 ②
’1cm 열상’ 대테러상황실발 첫 보도는 조선일보였다
Photo by The Climate Reality Project / Unsplash

2024년 1월 10일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고한 글이다.


역시 1등 신문 조선일보였다. ‘대테러종합상황실’의 “1cm 열상(찢어진 상처)으로 경상”이라는 가짜 정보를 누가 최초 보도했는지 분석 결과, 조선일보 장상진 기자의 <플래카드 들고 인파 제치며 왔다…이재명 피습 순간 영상 보니>로 확인되었다.

“대테러종합상황실 발 1cm 열상” 으로 보도한 최초 기사는 조선일보 장상진 기자의 ‘플래카드 들고 인파 제치며 왔다…이재명 피습 순간 영상 보니’였다. 이 기사는 제목과 본문을 여러 번 수정했다.

기사는 “대테러종합상황실은 이 대표 상태에 대해 “출혈량이 적으며, 목 부위 1cm 열상(찢어진 상처)으로 경상 추정”이라고 밝혔다”라고 쓰고 있다. 이 기사의 네이버 뉴스 입력 시간은 1월 2일 오전 11시 08분. 그러나 오후 1시 51분까지 수정한 흔적이 있다. 수정 기사는 언제 작성된 것일까?

조선일보의 기사 제목 본문 바꿔치기

해당 기사의 수정 전 제목과 보도 내용을 웹에서 조회한 결과는 더 놀라웠다. 11시 07분 43초에 MSN 뉴스 사이트에 올려진 동일 기사 제목은 <종이왕관 쓰고 웃으며 다가가 순식간에 공격… 영상 속 당시 상황>이었다. 이 기사 본문에는 “대테러종합상황실”,“1cm 열상” 내용은 아예 없다. 그리고 11시 8분에 입력된 네이버 뉴스 기사 제목은 <종이왕관 쓰고 웃으며 다가가 순식간에 목을 ‘푹’… 영상 속 당시 상황>으로 확인된다.

인터넷에서 장상진 기자의 ‘플래카드 들고 인파 제치며 왔다…이재명 피습 순간 영상 보니’의 수정 전 기사 제목과 내용을 조회해 보았다. 확인 결과 1월 2일 11시 07분 43초에 입력된 MSN 기사와 11시 8분에 네이버 뉴스에 입력된 기사 제목을 찾을 수 있었다.

수정 전 기사 제목엔 “순식간에 공격” “목을 ‘푹’”이라는 자극적 표현이 있지만, 오히려 기자가 직접 취재로 확인한 진실이 담겨 있다. 기자는 이재명 대표가 목을 ‘푹’ 찔린 사실도, “이 대표는 셔츠가 피로 젖을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또한 복수의 유튜브 채널 생중계 영상에서 피습 장면을 직접 확인해 기사를 작성했다.

그런데 대테러종합상황실이라는 출처를 대며 기사 제목과 내용을 스리슬쩍 바꿔버렸다. 문제는 최초 기사 내용과 완전히 상반되게 ‘출혈량이 적은 경상’이라고 수정한 것. 기자는 직접 현장 영상을 확인하고 사실 보도를 했음에도 굳이 “1cm 열상의 경상”이라는 허위 정보를 인용해 수정했다. 사건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 아무리 허위라도 정부 발표는 무조건 사실이라고 믿고 순응하는 보도 관행 때문일까.

언론의 본령은 권력이 숨기려 하는 사실을 밝혀 보도하는 것이다. 매우 석연치 않은 기사 수정이다.

“1cm 열상” 기사 제목, 누가 시작했을까

기사 제목에 “1cm”를 언급한 최초 기사는 동아일보 이예지 기자의 <이재명, 부산서 흉기 피습…목 부위 1㎝ 열상>이다. 하지만 이 기사 또한 애초에 제목은 단순한 속보였다. 역시 웹에서 수정 흔적 확인 결과, 10시 40분에 올려진 <[속보] 이재명, 부산 방문 중 피습>이 원래 기사 제목이었다. 어느 틈엔가 “1cm”가 포함된 제목과 본문으로 바뀐 것.

1월 2일 10시 40분에 속보로 올라온 좌측의 동아일보 기사 제목은 어느 틈엔가 우측 ‘이재명, 부산서 흉기 피습 …목 부위 1cm 열상’으로 수정되었다(기사 출처 : 빅카인즈, 동아닷컴).

기사 제목이 수정된 시각은 네이버 뉴스와 기자 당사자만 알 것이다. 그러나 네이버 뉴스 댓글에 “1cm” 언급이 나오기 시작한 타임 스탬프를 확인해 기사와 대조해 보면 “1cm”가 회자 되기 시작한 시간대를 추정할 수 있고 기사 수정 시각도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우리는 대테러종합상황실 문자가 기자들에게 언제쯤 ‘뿌려졌는지’ 추론하기 위해 네이버 뉴스 이재명 피습 관련 뉴스 댓글을 수집하여 “1cm” “1센티” “1센치”라는 언급이 있는 타임 스탬프(작성 시간)를 확인했다. 분석 결과 “1cm”를 최초로 언급한 댓글이 달린 시각은 11시 08분. 이 시각 이후 기사들은 제목과 본문을 고쳤을 것이다.

이후 언론사들은 일제히 기사 제목에 “1cm”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11시 22분에 올라온 조선일보 박주영 기자의 <경찰 “이 대표, 목 부위 1cm 열상… 경상 추정”> 기사는 기사 제목 수정 없는 확정 보도였다.

네이버 뉴스 입력 시간 순서로 “1cm”가 포함된 기사 제목 정렬 결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비롯해 다수의 경제지에서 일제히 “1cm 열상”이라는 제하의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재명 대표를 향한 악성 댓글이 네이버 뉴스를 지배했다. 1월 2일 하루 동안 “1cm” “1센티” “1센치”를 언급한 조롱성 댓글은 약 1만 3천여 건이 달렸다.

포털 기사 수정 이력제 도입 시급

윤석열 정부가 맹렬히 엄벌하고자 하는 이른바 ‘가짜뉴스’ 진원지가 국무총리실인 사실도 충격이지만, 기자 스스로 직접 목격하고 취재한 사실 기사까지 불명확한 정부 기관 문자 하나 받고 180도 뒤집는 게 더 놀랍다. 더욱 놀라운 건 일제히 ‘받아쓰기 기사’로 태세 전환하는 언론사와 기자가 그렇게나 많다는 것. 세상에 이런 일이!

혼란스러운 포털 뉴스 환경에서 뉴스 진위를 가리기 점점 어려워진다. 슬며시 바꾼 기사의 과거 이력을 모르니 진실이 휘발되었다 한들 알 턱이 없다. 네이버 뉴스를 비롯해 플랫폼 사업자는 기사 수정 이력제를 도입해 뉴스 이용자의 알권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자들도 속보경쟁보다 충실하고 진지하게 기사를 써서 수정을 최소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네이버 뉴스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기사 수정 이력 기록도 검토해보길 바란다.

가짜뉴스 엄벌보다 더 필요한 건 진짜 뉴스를 보호하는 일이다.